2년 동안 뭐하고 살았지

갑자기 정리하고 싶어져서 올리는 2년 동안의 간단한 기록

시간 순서는 뒤죽박죽이다. 사진 정리를 빨리 하다보니 섞임.
군대를 다녀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으며 주변 환경과 나의 마인드, 생각, 가치관이 많이 바뀐 시기이다.
사실 남들보다 편하게 군생활 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워낙 특이한 보직이고 말 못할 이유로 여러가지 고충도 있었다. 그래도 같이 지냈던 사람들 덕분에 잘 버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전부 닉네임이다.

23년 7월, 나는 여름방학을 맞았고 계절학기로 교양 하나를 들으며 랩인턴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군에 현역으로 안 가고 전문연을 할 생각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공군은 편하긴 한데 3개월 더 복무하는 건 너무 싫어서 육군 보직 중에서 좀 편하게 할 수 있는게 있나 찾아보았다. 그렇게 발견한 한 보직에 7월 입대로 지원했으나 떨어졌고 9월 군번으로 다시 한 번 지원해놓은 상태였다. 이미 한 번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떨어질거라 생각하고 사실 군대를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전문연이나 갈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계절학기가 끝나고 미국에 갈 일이 생겨 겸사겸사 미국으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는 분이 있어서 애플 본사 투어도 했다. 저 당시에 강남에 첫 파이브가이즈 지점이 열었던 것 같은데 미국 본토에서의 파이브가이즈는 진짜 엄청 맛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맛있게 먹던 중 메시지가 왔다. (로밍되어 있어서 바로 왔던 것 같다)

진짜로 고기 먹다가 체할 뻔했다. 저 합격 문자를 받으면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무르지 못한다. 그렇게 9월 18일에 나는 갑자기 생각에도 없던 입대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아직 저 때는 실감이 잘 안 났고 일단 남은 여행이나 즐기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돌아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참 아름다웠다.

귀국하니 좀 실감이 났다. 한 달 반 정도 입대가 남았었는데 입영통지서를 확인했다…

예정에 없던 입대를 해야 한다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냥 받아들이고 훈련소에 가져갈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입대 전에는 정말 오만사람을 다 만났던 것 같다. 마치 내일 세상에서 없어질 사람처럼 평소에는 잘 안 보던 지인들에게도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대부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 입대하게 되었다”는 마법의 한마디에 약속에 나와주었다. 그 때 밥 사준 사람들도 많은데 다들 너무 고맙다.

입대 직전에는 노는 것도 이제 지치고 정말 할 게 없어서 손 놓은지 오래된 PS를 잠시 했다. 근데 저거 할 시간에 놀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있지만 자대 가서도 PS를 잠시 했기 때문에 (한달정도) 뭐 나쁘지 않았다.

입대 전에 친한 형한테 이 카톡을 받았는데 너무 웃겼다.

입대 날 논산 훈련소 근처에 있는 불고기 집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먹었다. 그 때 음식점 밖에 평화롭게 누워있던 저 고양이가 그렇게 부러웠다.

훈련소에 들어가서 정말 엄청 굴렀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들었다. 특히 나는 입대 전에 내 인생 몸무게 최고치를 찍었기에 달리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입대 전에 술만 마시지 말고 운동 좀 할걸 하는 후회를 정말 많이 했다.

피복을 보급받고 군복을 입고 훈련소 분대 사진을 찍었다. 자대는 면접보고 간 곳이고 대부분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라 사람들 괜찮은 건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었는데, 훈련소는 그냥 육군 들어가는 사람들 아무나 와서 섞인 곳이었기에 그냥 날 것의 야생이었다. 문신이 온 몸에 휘감겨있는 건 기본이며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다행히 우리 분대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부모님들께 보내드리는 용도로 사격 훈련 도중에 찍었던 사진이었던 것 같은데 총도 제대로 못 쏘는 애들이 나름 멋있게 나오겠다고 열심히 폼 잡았던 것 같다. 훈련소에서는 K2 를 썼는데 너무 낡아서 이거 총알이 나가기는 하나? 라는 의심이 들었으나 생각보다 잘 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훈련소에서 다른 체력적인 것들은 잘 못했지만 유일하게 총은 잘 쐈다. 20발 중에 19발 맞췄던 걸로 기억한다. 자대는 비전투 부대라 총 쏠 일은 많이 없었지만 주기적으로 했던 사격 훈련에서는 꾸준히 잘 쐈기에 휴가도 쏠쏠하게 벌었다. 자대에서는 K2C1을 썼는데 꽤 세련되게 생긴 신형 총이었다. (K2 개량한 거)

그렇게 어찌저찌 훈련소를 수료했다.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자대에 들어간 후 첫 평일 외출을 동기들과 함께 나왔다. 파스타 집에 다같이 갔던 것 같다. 보통은 동기가 많아야 1~2명 정도 있는데 우리는 특이하게도 자대에 동기가 10명이었고 알동기(입대 날짜가 같음)였다. 그래서인지 동기들끼리 힘이 많이 됐고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며 잘 지내고 있다.

훈련소에서 달리기가 가장 약점이었던 나는 그걸 극복해보고 싶었다. 한달 목표로 한달 안에 누적 100km 달리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창 달리기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저만큼 달린적도 있었다. 자대에서 내가 있었던 분대는 한달 목표를 각자 정하고 월말에 성공 여부를 인증하고, 만약 실패했다면 재밌는 벌칙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 벌칙 자체도 우리 분대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도맡아서 하기, 외출 나갈 때 웃기는 복장하고 나가기 (신분 위장을 위해 사복을 입고 외출을 나갔다) 등 의미있거나 재밌는 벌칙이었기에 다들 재밌게 참여했다. 정말 좋은 문화였다. 목표를 하다보면 시간도 잘 갔다.

아마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였던 것 같은데 평소에는 별 감흥없던 카이스트의 풍경이 그렇게 예뻐보였다. 카이스트는 대부분의 건물에 출입증을 태그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휴학생은 출입이 막혀서 꽤나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동기 중에 woo 는 나와 훈련소 때 같은 중대 바로 옆 생활관 이었으며 자대 와서도 같은 생활관에 배정받았다. 군생활 중에 가장 오래, 많이 본 동기였다. woo는 겨울에 스키타는 걸 정말 좋아한다. 자대에 전입온지 얼마 안 됐을 무렵 (23년 12월 쯤?) woo는 나와 이번 겨울에 어떻게든 스키를 타러 간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다가 동기들 몇 명 모아서 스키 타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짬이 낮아 휴가를 자주 쓰기는 무리였던 우리는 주말 하루 동안 하루종일 나갈 수 있는 외출인 주말 외출로 나가서 근처 스키장에 가 약 7시간 동안 스키를 내리 타고 다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다. 절대 복귀가 늦으면 안 됐기에 시간 계산을 철저히 했던 기억이 난다.

스키를 탈 줄 아는 동기 중에 시간이 되는 동기였던 T를 추가로 섭외해 3명이서 다녀왔다. 시간적으로 엄청 촉박한 일정이었고 7시간을 스키를 타니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woo와 나는 다음 겨울에도 (25년 1월) 똑같이 추진해서 동기 cyan을 추가해 다녀왔다.

나는 24년 6월 전까지는 휴가를 많이 안 썼다. 그래서인지 그 전까지는 사진이 많이 없다.. 첫 휴가 때는 강릉에 여행을 갔다. 내가 전입올 당시 분대장이었던 chang은 드립 커피를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이를 갓 전입온 우리 동기들에게 전파했다. 그 중 나는 특히 흥미가 끌려서 열심히 전수 받았고 지금까지도 드립 커피 내리는 걸 취미로 하고 있다. 군대에서 얻은 몇 가지 소중한 것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첫 휴가 때 테라로사 본점에 갔다. 테라로사는 강릉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알고 있다.

chang은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직접 찾아가며 그 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 chang은 나와 나의 동기 mok을 데리고 외출을 나가서 전시회에 데리고 갔다. 사실 미술 전시회라 하면 좀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chang 이 소개를 해준 덕분에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어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서울에 있는 리움미술관 이었는데 전시회 자체도 기존에 고정관념인 그림 걸어놓는 전시가 아니라 공간 전시, 반응형 전시 형태여서 꽤나 재미있게 구경했다. 작가의 의도를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리움미술관의 유명한 사진 스팟에서 사진도 찍었다.

우리 분대는 먹는 거에 진심이었다. 우리는 간부들 몰래 여러 조리기구를 밀수해와서 분대 내에서 요리를 해서 먹곤 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브레인들이 모여서 치밀하게 계획을 짜 요리를 하니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많다.

24년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름에 너무 더워서 빙수를 해먹었다. 짬으로 나온 우유를 얼려서 밀수해온 빙수 제조기에 넣고 갈았다. 그리고 밀수해온 초코 시럽, 팥, 초콜릿 등을 올려서 빙수를 먹었다. 여름에 꽤 자주 해먹었는데 비주얼은 저래도 엄청 맛있었다. 우리 분대에서는 요리해 먹는 즐거움이 군생활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6월 말에 나는 휴가를 나왔고, 용산 전쟁기념관을 갔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가서 어떤 앱을 켜고 몇 시간 앉아있으면 나오는 인증서를 부대에 제출하면 주말외출을 하나 준다. 그 때는 그 주말외출 하나가 그렇게 소중했다.

천안 독립기념관도 갔다. 여기도 어떤 앱을 켜고 전시관을 돌아다니며 퀴즈를 풀고 몇 시간 앉아있으면 휴가 하루를 준다. 휴가 하루는 엄청난 가치이기에 다들 무조건 군생활 중에 한 번은 독립기념관에 갔다. 독립기념관은 정말정말 엄청 넓은데 뜨거운 땡볕에 넓은 곳을 돌아다니느라 너무 더웠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 있던 친구와 서울 투어를 하기도 했다. 본가가 서울로 이사한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나는 이 휴가 때 처음으로 서울집에 왔다.

서울에 꽤나 예쁜 장소가 많았다.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서울과 좀 친해졌다.

나는 군에서 한 때 “휴미남(휴가에 미친 남자)” 라 불릴 정도로 휴가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러던 중 육군창업경진대회를 알게 되었고 대회에서 1차 통과만 해도 기본 2일 휴가 보장에 2차 발표에서 더 높은 상을 받으면 최대 5일까지 휴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휴미남” 이었던 나는 절대 지나칠 수 없었기에 마찬가지로 휴가에 미쳐있는 같은 생활관 동기 2명, chris와 woo를 섭외하여 3명이서 팀을 이루어 육군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다. 한 팀 당 최대 3개의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었기에 각자 하나씩 생각해서 제안서를 쓰고 각 제안서마다 아이디어 고안한 사람을 팀장으로 하여 제안서를 3개 제출했다. 사지방에 같이 내려가서 서로 제안서를 검토하고 열심히 작성하고 수정해서 제출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고안한 아이디어가 1차를 통과했다. 그렇게 내가 팀장이 되어 우리 3명은 2차 발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사실 1차에서는 그냥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마인드로 3일 정도 투자했다. 1차를 통과하자 우리는 좀 더 욕심이 생겼고 열심히 준비하게 되었다.

발표 영상을 찍고, ppt 자료를 만드는 등의 작업을 하려면 외출을 나가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대대장님이 육창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기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육창경 준비 명목으로 정기 외출 외에 특별 외출을 여러 번 나갔다.

물론 대회 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합법적으로 부대를 나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우리는 틈틈이 놀았다. 부대 근처에 집이 있었던 chris의 집에서 주로 작업을 하고 주변으로 나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놀았다.

완전 미국 스타일의 햄버거 집이었는데 진짜 엄청 맛있었다.

저녁에는 갈비를 먹었는데 감사하게도 chris 부모님께서 사주셨다. 육창경 준비하느라 외출을 꽤 많이 나갔는데 사진이 많이 없다. 아마 열심히 놀고 열심히 준비하느라 바빴나 보다.

1차를 통과했으니 휴가를 최대한 뽑아내겠다는 열정에 모두들 준비를 꽤나 열심히 했다. 나와 팀원들 모두 여러 곳에서 조언을 구하고, 서로 의견도 많이 내고, 작은 것 하나에도 열띤 토론을 했다. 나는 팀장으로서 이걸 어떻게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빡세게 드라이빙했다. 항상 끝날 때 쯤 되면 chris와 woo 모두 약간 지쳐보였는데 좀 미안했다. 그럼에도 볼멘소리 없이 같이 열심히 해줘서 너무 고맙다. 둘 모두 똑똑한 친구들이라 많이 배우기도 했다.

언젠가의 평일 외출이다. 이 날은 외출이 남아있던 동기들끼리 나와서 제주 흑돼지를 먹고 저 카페에 갔다. 그 제주 흑돼지 집이 너무 맛있었다. 저 카페는 바나나 푸딩이 시그니처라 해서 먹었는데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육창경 발표 영상까지 제출하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던 시기, 휴가에 목말랐던 나는 또 다른 군 대회를 찾았다. “국방AI경진대회” 였는데 1차는 온라인 개인전 시험 형태 였고, 1차에서 통과한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2차 오프라인 대회를 나가는 방식이었다. 같이 지냈던 사람들 전부 학력도 좋고 AI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본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1차만 어떻게 통과하면 우리끼리 팀을 이루면 되겠다는 계산이 돌아갔다.

같이 일했던 사람 중 나를 포함해 꽤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1차 시험을 원래는 사지방에서 할 계획이었는데, 사지방 컴퓨터 개수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한데다 워낙 사지방이 노후화되어서 온라인 시험 테스트 창이 열리지 않았다. 중대장님께 정중하게 사유를 설명하고 외출 주실 수 있는지 간절히 부탁드렸는데 대회를 왜 이렇게 많이 나가냐고 하시며 (우리 외에도 다른 대회에 출전한 사람들이 중대에 많았고 이것 때문에 특별 외출이 많은 시기였다) 화를 내셨다. 대회 많이 나가는게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특별 외출을 다들 많이 나가는 것을 안 좋게 보신 것 같았다. 결국 대회를 하고 오기에도 꽤나 촉박한 시간을 외출로 받았다. (극대노 하셨는데 외출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음)

나는 woo와 같이 근처 시내 pc 방에 가서 시험을 쳤다. 시험 시작되고 문제를 봤는데, 모델 정확도로 채점을 하는데 테스트케이스는 hidden 인 것을 본 나와 woo는 실력 게임이 아니라 운빨이라는 판단이 섰고 촉박한 시간에 그냥 빨리 풀고 나가서 잠깐이라도 놀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열심히 문제를 다 푼 나와 woo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빨리 제출하고 나왔다. 남은 외출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 와중에 삼겹살 3인분을 둘이서 30분만에 구워먹고 젤라또까지 야무지게 먹은 우리는 복귀 시간 1분 전에 위병소를 통과했다. 택시기사님한테 복귀 시간 늦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치 택시 기사님이 복귀 시간 걸린 것처럼 초스피드로 위병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택시 기사님 짱

나중에 확인해보니 역시나 점수가 깎였고 떨어졌다. 그래도 전공과 관련있는 대회라 욕심이 있었는데 아쉬웠다.

항상 외출나올 때마다 많이 갔던 “인비저블 커피” 라는 카페다. 드립커피가 너무 맛있었는데 원두 자체의 향이 항상 너무 좋았다.

10월 말에 휴가를 나왔다.

휴가 첫 날에는 육창경 시상식에 갔다. 육창경은 시상식 전까지 최종 결과를 알려주지 않고 시상식에서 공개한다. 나는 우수상 정도만 해도 선방했다는 생각으로 갔다.

시상식 전에 랜덤으로 뽑아서 2팀을 발표 시킬 것이니 모든 팀들은 발표 준비를 해오라는 공지를 받았다. 그 시기 나는 업무 때문에 바빴고, 자유시간이 많이 없는 군대에서 업무하고, 쉬는 시간에 본인 공부하고 노느라 정신 없었던 나와 woo, chris 는 설마 랜덤 뽑기에 우리가 걸리겠어? 하고 준비는 안 해갔다…

시상식에는 3스타 등 여러 높은 계급의 간부들과 출전한 팀들, 부모님들도 같이 오셨다. 육창경 생각보다 큰 대회였음.

시상식 시작하며 심사위원장님이었나 누군가가 “육군창업경진대회” 라는 8글자 중에 2글자를 고르는 방식으로 발표할 팀을 뽑았다. 근데 우리가 걸렸다. ㅋㅋ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를 발표시키려고 내정해놓고 미리 2글자 뭐 고를지 짜놓았던 것 같다)

준비를 안해서 셋 다 당황했으나 어찌저찌 발표를 했다.

그리고 장려상부터 한 팀씩 부르며 시상을 하는데 아무리 지나도 우리 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에 최우수상 팀과 대상 팀만 남았을 때 대상 팀을 발표했는데 우리 팀이 대상을 탔다. wow

국방일보 인터뷰도 했음.

열심히 준비한만큼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 우리 셋 모두 기뻤다. 그렇게 기분 좋게 휴가 5일을 벌면서 10월 말 휴가를 시작했다. 상금을 500만원이나 받았는데 그 중 100만원을 부대 내 어려운 사람 돕는 모금에 기부하고 또 100만원을 육군본부에 있는 기금 (부상을 입은 장병 치료비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장병에게 지급된다고 알고 있다)에 기부했다. 부대장님이 이걸 들으시고는 기특하다며 친히 표창을 주셨고 통 크게 포상휴가 5일을 같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이 육창경으로 10일의 휴가를 벌었다. 군필자들은 10일의 휴가가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이 10일 덕분에 힘들었던 상병 말에 휴가를 펑펑 쓰고도 찍턴을 일찍 나올 수 있었다.

휴가 2일차 였나 3일차에 부대에서 같이 일하는 yongxii, jm, hwiii와 홍제동에 놀러갔다. 마침 셋 다 휴가가 겹친 김에 놀러갔는데 힐링 되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위에 사진은 홍제폭포인데 인공폭포라고 한다.

휴가 5일차 인가에 대전에 갔다. 엄청 더웠는데 꽃이 예뻐서 찍었다.

그리고 가족여행으로 정동진에 갔다가 복귀했다. 이 때 진짜 뭔가 많은 일이 있었던 알찬 휴가 였다.

사실 이 10월 말 휴가 전에, 갑자기 부모님께서 일이 있어서 대만에 가는데 혹시 따라와서 여행할 생각 있냐고 하셨다. 10월 말에 8일 휴가를 갔다가 11월 초에 한 번 더 6일 휴가를 쓴다는게 너무 휴가를 많이 쓰나 싶었지만 대만은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라 놓칠 수 없었다. 부족한 휴가 to 중에 운이 좋게도 간신히 to를 잡고 국외여행허가서 결재를 빠르게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10월 말 휴가를 복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초에 다시 휴가를 나와서 홀로 대만으로 날아갔다. (부모님은 먼저 대만에 가셨음)

우리나라가 식후에 커피를 마시지만 대만은 차를 마신다. 마치 공차와 같은 찻집 프랜차이즈가 엄청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 메뉴는 다 맛있다. 위에 사진에서 들고 있는 것도 차다.

중정기념당이다. 대만의 초대 총통이 장제스를 기념하려고 세운 기념관인데 상당히 웅장하다.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행 중 하루는 중학교 동창을 만나서 같이 여행했다. 마침 그 때 대만에 교환학생으로 와있어서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대만에 대해서 엄청 잘 알고 중국어도 유창하게 했는데, 같이 하루 여행하니 엄청 재밌었다.

여행 마지막 날에 타이베이를 벗어나 탐수이 라는 지역을 갔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딱 월미도 느낌이다. 경치도 좋고 재밌었다. 하루 날 잡고 가면 딱 좋은 여행지다.

귀여운 고양이가 있었다.

휴가 복귀한 후로는 이제 복학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미뤄두었던 공부도 좀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 틈틈이 공부를 했었다. 5명 정도 모여서 딥러닝 스터디도 하고 동기형이랑 영단어 책 하나 사서 외우고 같이 쪽지시험치기도 하고 (영단어 책 오래 걸리긴 했지만 완주했다) 혼자 논문도 읽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생각보다 열심히 한 것 같다. 하루에 저녁 먹는 시간 빼면 3시간 정도 되는 자유시간에 공부하고, 혼자 쉬고, 동기들이랑 4인큐로 모바일 배그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알차게 살았다.

12월에 분대장을 달았다. 병장 되어 말년에 분대장하는게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전에 분대장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3년 겨울에 했던 것처럼 주말 외출을 맞춰서 woo, T, cyan 과 함께 또 스키장을 갔다. (24년 12월 말 쯤) 3명은 나보다 스키를 꽤 잘 탔는데 중급 정도에서 타던 나를 3명이서 최상급 슬로프로 끌고 갔다. 처음에는 거의 기어가다 싶이 하다가 중반쯤부터는 적응해서 빠르게 탔다.

선임이었던 형이 알려줘서 말년에 크래프톤 AI 펠로우십에 지원했다. 서류로 이력서를 내서 통과된 후 1차는 AI 관련 + 선형대수학 문제를 카메라 감독하에 온라인으로 풀었고 (휴가 하루 썼음..) 통과해서 2차는 크래프톤 역삼 사옥에 초대받아 오프라인으로 시험을 쳤다. 예상과 다르게 대부분 완전히 대학 전공 수학 수준의 문제여서 광탈했다.

회사 내에서 간단한 회사 소개와 점심을 제공해줬는데 밥이 정말 맛있었다.

2월 초에 동기 10명이서 주말 외출을 맞춰서 나왔다. 전역 전에 다같이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놀았다. 파티룸을 잡고 놀았는데 재밌었다.

다같이 군복 입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우리는 밖에 나올 때 사복을 입고 나와야해서 군복 사진이 없었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군복을 가방에 들고 나와서 갈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너무 번거로워서 평소에는 이렇게 하진 않았다.

찍턴 전 날에 마지막 평일외출을 썼다. 같은 생활관 동기였던 chris, woo 와 함께 외출을 나와서 “텍사스 로드 하우스” 라는 스테이크 집에서 고기를 썰었다. 맛은 그냥 그저 그랬다. 저녁 먹고 나와서 카페 갔다가 노래방 갔다.

같이 일했던 사람 중 업무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고, 적당히 하는 사람도 있었다. 꼭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본인의 선택이었다. 나는 업무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힘들었지만 그래서인지 팀에 알게모르게 애정이 있었다. 찍턴 전 마지막 출근 때 고마웠던 몇몇 직원 분께 손편지와 함께 초콜릿을 선물하고 나왔다.

직원 분들 중에서 나랑 가장 친했던 분이 있었다. 나의 사수이자 바로 옆자리에서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었다. 친분이 꽤 쌓였던 만큼 연륜에서 나오는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 군생활동안 팀에 있던 병사들을 불러서 치킨 같은 것을 사주시고, 추석에도 따로 팀에 있는 병사들만 불러서 송편도 사주셨다. 너무 감사한 점이 많았고 군생활을 버티게 해준 사람 중 한 분이다. 항상 나와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내가 존경했던 간부 두 분 중 한 분이셨다. 이 분께서는 내가 찍턴 나가기 전에 따로 만나 답장 편지와 함께 직접 볶으신 커피 원두 (커피를 좋아하셨다) 와 녹차 티백을 선물해주셨다. 진짜 마지막까지 GOAT 인 분이었다.

사실 2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부대 안에서 업무를 하고 이따금씩 힘든 작업 (=배수로 파기와 같은 삽질)을 하며 보냈다. 이 내용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는 휴가 위주로 적어서 즐거웠던 순간들만 적은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업무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나의 원래 전공과 크게 연관이 없는 일이어서 시큰둥했지만 하다보니 오기가 생겨서 나중에는 일에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과를 냈고, 내부에서 상당히 많은 인정을 받았다.

처음 내가 혼자 구상할 때는 직원분들이 다들 잘 안될 것 같다고 예상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혼자 힘으로 완성시켜서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군대라는 경직된 상하관계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시간만 사용하여 (일과 시간 외에는 일을 하기 쉽지 않았다) 기본 지식이 전무했던 분야에서 처음부터 배워가며 일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가며 했기에, 그 일에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일에 관해 지금 남아있는 건 내 머릿속 기억밖에 없다. 만들었던 모든 자료는 반출하면 안되기에 전부 두고 나왔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남는 건 기억밖에 없다니 아이러니하다. 처음에 찍턴을 나왔을 때는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할 연구를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하는 연구는 나의 아이디어, 자료, 결과물로 나온 논문 모두 나의 것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woo와 연락하다가 연구가 힘들다고 했더니 woo는 군대 때 힘들게 업무하던 거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맞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찍턴 나와서 집에 오자마자 생활관에 있던 내 장비를 전부 들고와서 드립커피부터 내렸다.

찍턴 기념 드립커피는 그 어떤 커피보다도 달았다.

육창경 상금 기부한 것으로 찍턴 중에 계룡대에 초청되어 인사사령관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기부증서 수여식도 했다.

chris는 아쉽게도 당시 미국에 잠깐 가서 나와 woo만 갔다. 양쪽에 서 있는 두 분은 원스타, 투스타 인데 말년이 되니 딱히 감흥이 없었다. 이병 때는 스타보면 온 몸이 얼었는데…

25년 3월 17일, 드디어 전역을 했다. 이미 찍턴 중에 복학을 해서 전역 전 주말에만 잠시 들어와 부대에 있다가 월요일에 전역 했다.

전역하고 나서는 학교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복학생 아싸가 될 뻔했으나 다행히 부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카이스트 였다. 바로 윗 선임 라인 (2개월 차이), 동기들과 함께 다같이 복학했다.

카이스트는 봄에 딸기파티를 하는 전통이 있다. 같은 부대 출신끼리 모여 딸파를 했다.

중간고사 공부도 도서관에서 같이 모여서 했다. 오랜만에 중간고사 보려고하니 정말 힘들었다. 이때까진 학교와 사회에 아직 적응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중간고사 끝나고 T, yeah, jm 과 드라이빙을 갔다. 시원하게 힐링했다.

아직 부대에 현역으로 있는 mo와 song이 (song은 최근에 전역했다) 카이스트에 놀러왔다. 학교에 있던 hwiii, bj, T도 합류하여 ‘오가다’에서 근황 토크를 했다.

축제도 보러갔다. 하루는 bj와 T, 하루는 jm이랑 같이 봤다. 츄랑 아이브 왔었는데

그냥 여신 그자체 였다.

기말고사 끝나고 T와 소소하게 치킨을 뜯었다. 둘다 기말고사 직전까지 너무 바빴고 저 때도 둘다 시험 이후로 미뤄둔 과제가 쌓여있어서 시험 끝났다는 기쁨보다 둘다 퀭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은 연구실 인턴을 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2년 동안 참 알차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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